2012-02-26 젊은이 예배 전종국목사님 마3:1-7 "내 인생에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Posted at 2012/02/29 08:25 // in Essay // by Daniel
2012-02-26 젊은이 예배 전종국목사님 마3:1-7 "내 인생에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설교
마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경쟁과 효율이 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강조되다 보니 관계성보다는 치열한 싸움만 남게 된다. 이기주의 팽배

학교의 선생과 학생의 관계도 단지 지식 전달자일 뿐
학교 급우들도 비교 대상, 경쟁자가 된다

정말 행복할까?

시간이 흐를 수록 삶이 점점 피곤해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감이 사라진다
제대로 살고 있는 지 회의감마져 든다

결국 경쟁, 효율만 외치다가 남아있는 것이 없게 된다. 혼자만 남아 성공해봤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경쟁과 효율의 밑바탕에는 결국 나의 욕심이 있다. 그리스도가 아닌 "나" 가 주인 노릇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봐야 한다.

성장과 성공이라는 잠시 잠깐의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원치 않는 깨어짐의 아픔을 겪게 된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다.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우리의 관계가 사랑을 전제로 하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과정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하나님을 높이고 주변의 관계가 따듯해질 것이다
서로를 긍휼히 여겨줄 것이다
그럴 때 동역의 의미가 살아나고 서로를 소중히 여겨주게 된다
본질적인 삶의 질문과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가 왕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요햔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가실 길을 닦은 마지막 선지자
이사야에 나온 예수님 이전에 광야에 외치는 소리

요한은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제사장 아버지와 아론의 직계 어머니
출생 사건도 특이하다
이 스토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기대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닐까
이른바 엄친아였다.

충분히 정계진출하여, 제사장 계에 진출하여 떵떵 거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택한 곳은 그런 좋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인도함을 받았던 광야였다
광야는 음성을 듣는, 하나님을 만나는, 사명을 찾는 장소이다.
물론 위험하다. 곳곳에 위험한 동물과 곤충이 있었다.
살아갈 수 있을 지 없을 지 투쟁하는 장소. 치열한, 각박한 곳
우리의 인생 삶의 자리. 광야.
왜 광야의 삶을 우리에게 허락하실까. 하나님 앞에 다시금 중심을 잡으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드는 생명된 삶을 살라. 인생에 예수님을 붙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를 내 인생에 주시는 것이다

내안의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는 곳.
내 욕망, 허영심, 자랑, 나의 우상과 왕들이 광야란 거친 땅을 거치면서 드러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나오면서 기고만장 했다.
그러나 거친 광야를 들어가자마자 형편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 -불평과 불만, 원망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됐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광야를 피하지 말자.
내 삶의 광야를 기뻐하면서, 필요하다면 요한처럼 광야의 삶을 택하라
광야의 삶에 들어온 사람은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광야를, 교회와 사람이 그런 시간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세례요한을 사용하신 이유는 광야를 통해서 겸손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인지, 종인지 알게 된다
내가 주인공인지 조연인지 알게 된다.
그는 조연이 되는 것을 기뻐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 이후에 어떠한 삶을 선택하는가
예수님을 위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은 자기가 광야의 외치는 소리임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메시지만 외치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소리다
전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메시지만 남고 나는 사라지는 것이 바로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다.
그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다
주인공을 위한 조연이 삶

우리는 철저히 조연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 중요하지만 우리 인생가운데 우리 주님이, 그리스도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단 사실을 잊지 말자

그의 탁월함은 무엇인가
분수를 알았다.
주인공이 오셨을 때 영광을 돌렸다

성경의 위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조연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자신의 면류관을 던지면서 나의 주인되시고 왕되신 주님을 고백했다

나약해 보였을 지도모르는, 한참 모자란, 경쟁에 지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역사의 주인공 삼으셨다
약한 자를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

반면에 경쟁과 효율에서 승리한 자, 세계 흐름을 알고 성공한 자들에겐 하나님은 아무 상관 없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되심을 고백하며 철저히 조연을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다. 당회가, 목사가 아니다.
우리 그런 인생 살자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광야로 운집했다.
예수님 사역 때에 일어났던 일과 같은 사건이었다.

왜 왔을까
주차할 편한 공간도 없고 불편한 자린데 왜?
듣기 위해서다
과연 세례 요한의 뛰어난 설교 때문일까
그가 전대미문의 부흥사였기 때문일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설교 찾아 옮긴다.

그의 언변은 매우 거칠었다.
교육 많이 받은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비교할 때 보잘것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한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변화됐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 사회에 영적인 큰 파장을 주었다.

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사람들의 귀에 맞게 말씀을 가공했다.
그러나 요한은 달랐다. 그대로 전하니까, 그대로 사니까 그의 말씀에 권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들은 거칠고 빡빡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자체를 먹자.
거칠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다.
내 입맛에 맞게 가공된 설교 백번 들어봐야 변화 없다. 유명한 목사 설교 찾아 들어봐야, 소용 없다.
듣는 귀만 넓어져서 교만해질 따름이다.
교회에 앉아서 평가한다. 이래서 문제 저래서 문제...
교회 규모, 겉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
그러면 2000년 전 그 때 그 당시의 부흥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말씀이 우리 삶의 변화의 원천이 된다.

듣기 좋은 설교, 유명한 설교에 끌리는가
어쩌면 그것은 내 맘에 그리스도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입맛에 따라 내가 주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왕이 되게 하라
거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붙들고,
그대로 순종할 때 변화된다
내 삶에 온전한 그리스도의 통치가 회복되고
내 삶에, 내 팀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가 회복될 것이다.

나는 없어지고 그분만 남으면 된다
예수님만이 주인되시고 주인공이시다.
수많은 큰 교회와 사람들이 사라졌다.
예수님 앞에선 무엇이 중요한가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됨이 중요치 않다
그리스도께서 기억하시는 성도가 되자. 그러면 된다

주인공 되신 예수님을 빛내는 조연 인생 되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삶으로 살자.
그래서 하나님께 기억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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