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를 분별하게 해주는 적극적 증거 5가지

Posted at 2012/05/30 13:00 // in Misc // by Daniel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게 해주는 적극적 증거 5가지(p107-139)

                                                                                         조나단 에드워드


어 떤 영적 현상이나 어떤 성령 체험 혹은 어떤 성령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분별해낼 수 있겠는가? 앞서 말한 9가지 증거들은 성령의 역사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단도 흉내 낼 수 있는 중립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사단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고 흉내 내려고도 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것은 오로지 성령님만이 만들어내실 수 있는 일들이다. 에드워즈는 그와 같은 참되고 확실하며 뚜렷한 증거들이 무엇인지를 본문으로 읽은 요한일서 4장 전체에서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적극적 증거 1]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




예 수님은 고별 설교를 통해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가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실 것이며(요15:26), 자기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6:14). 이와 같이 성령은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은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신앙 고백을 하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며, 예수님께 순종하게 만들어준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곧 예수님 충만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일서 4장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4:2-3).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4:15).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고 있는 영이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존경을 높이는 방식으로 역사하는 것이 관찰될 때,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사람들의 구주이심을 선언하는 것이 진리임을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확신하게 하고 공고히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그 영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성령이 사람에게 오시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하게 만들며(고전12:3, 마10:32, 롬15:9, 빌2:11) 또한 성령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확고히 믿게 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육체로 나타나신 것,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 그가 유일하신 구세주이신 것,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단히 필요로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등을 더욱 확고하게 하시며, 그들이 평소에 가졌던 것 보다 그에 대해 더욱 높이 존경스러운 생각을 낳고, 그들의 애정이 더욱 그리스도에게 기울게 만든다.

반 대로 사단이 역사할 때에는 예수님을 낮추거나 가벼이 보게 만든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든지, 아니면 신성을 부인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지 않았다고 하든지, 아니면 우리들 보다 탁월한 선생이나 성자이다는 정도로만 말하게 한다. 사단은 특별히 인류의 구주의 신분으로 오신 그분에 대해 지독하고 화해할 수 없는 적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구속에 대하여 몹시 혐오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또한 대단히 기이한 현상이나 체험을 주어서 그것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 무엇인가 대단한 능력을 받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자기 무용담만 자랑하고 예수님을 높이거나 경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의 참된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높이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자기 의나 공적이나 혹은 신앙 체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을 높이게 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갈6:14).




[적극적 증거 2]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


사 도 요한은 4, 5절에서 참된 영과 거짓된 영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한편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세상의 영을 이기고, 다른 쪽의 사람들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것들을 말하며 세상의 것에 취미를 붙인다. 이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에 속한 것들, 즉 죄의 욕심에 속한 모든 것, 인간의 모든 타락한 일과 육욕을 포함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모든 행동들과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한다(요일2:15,16)(115).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쾌락들과 이익들과 명예들을 덜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방식으로 역사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한 것들을 열렬히 추구하는 것에서부터 떠나도록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이 계시해 주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의 미래와 영원한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 주고,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열렬히 추구하도록 만들며, 사람들이 죄의 무서움과 그것이 가져올 죄책과 죄로 인해 맞이하게 될 비참함에 대해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116).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양심을 깨우는 일에 절대로 힘쓰지 않는다. 우리 영혼 속에 있는 양심의 눈과 입을 여는 것은 마귀의 어두운 모든 계획을 방해하고 저지하기 때문이다(117). 양심이 죄의 무서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죄책의 큼에 대해 많은 느끼면 느낄수록, 자기 자신의 의에 안주하거나, 회심의 그림자 밖에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평온하게 안주하는 일이 더 적어질 것이다(118).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들이 죄의 무서운 본질에 대해 느끼게 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을 느끼게 되고, 죄 때문에 그들이 처한, 그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열렬한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단을 사용해서 구원을 구하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분명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119).

만일 사람들이 신적인 것들의 탁월함에 대한 감각을 가짐으로써 그리고 복음 안에 약속된 다른 세상에 대한 영적인 즐거움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세상적인 욕망의 대상들을 버리게 된다면, 그리고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것에서 떠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력이 더욱 풍성히 입증될 것이다(119f.).



[적극적 증거 3] 성경에 대한 높은 관심




사 람들이 성경을 매우 존중하게 되고, 성경의 진리와 신성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역사하는 영은 분명히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영감 하셔서 기록하여 주신 성경을 사랑하게 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4:6). 사도 요한이 우리의 말이라고 한 것은 사도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사도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듣게 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분이시듯이 오늘날 사도들을 통해서 기록해 주신 말씀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나 사람들의 영혼의 관심사에 있어서 모든 시대에 걸쳐서 교회를 지도하기 위하여 위대하고 영구적인 규칙으로 신적인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성령은 신적인 말씀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게 하고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몇 시간씩 보내거나 혹은 밤을 새는 일들이 있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3년 동안 매일 같이 말씀을 강론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 시에도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아주 열성적인 성경 읽기와 성경 공부였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하지 않는다. 기록된 말씀 이외의 직통 계시나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 충만하면 할수록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 성경을 더욱 더 가까이 하게 만드는 것이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조명(照明)하시어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만일 성경을 무시하고, 성경을 부인하는 영이 있다면 그는 분명 성령과는 다른 영이다. 자신의 내면의 빛이나 체험만 강조하는 신비주의는 이단적이다.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장해서 많은 백성들을 미혹하였던 이장림 목사도 성경에는 없지만 직통 계시를 주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오늘날도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일은 게을리 하면서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직통 계시를 주신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사단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성경의 빛에 의하여 그의 어두움의 나라가 전복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찔리고 정복당하는 것도 그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계12:7,11;19:15,엡6:17), 그 거룩한 책, 즉 성경에 대하여 언제나 치명적인 악의와 증오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마귀는 그 빛을 꺼버리기 위하여, 그리고 사람들을 그 빛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해 왔다. 성령 충만은 반드시 성경 충만이다. 성경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가득히 채울 때에 우리는 아주 건전한 성령의 은혜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적극적 증거 4] 건전한 교리와 신학.




우 리는 진리나 교리(敎理)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리는 메마른 뼈다귀와 같아서 교리 공부를 많이 하면 은혜가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찬양 집회나 기도 집회는 선호하지만 성경의 기본 진리들을 학습하는 일은 아주 경원시한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부흥의 역사를 읽어보면 성령의 역사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났던 시기에는 성경의 주요 진리, 기독교의 중요 진리에 대한 아주 강렬한 관심과 신앙 고백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성령은 곧 “진리의 영”(요14:17,15:26,16:13)이시기 때문에 참된 신자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주요 진리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 역사하는 영의 작용 방식을 관찰하는 가운데 그 영이 진리의 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본다면, 즉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진실인 것에 대하여 확신을 주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영이 바르고 참된 영이라고 안심하고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역사하고 있는 영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과, 그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평소보다 더욱 민감하게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인생은 짧으며 대단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면, 그리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면, 그리고 그들의 본성이 죄와 행동으로 지은 죄가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면, 그리고 건전한 교리에 일치하는 다른 진리들을 확신케 해 준다면, 이와 같이 역사하는 그 영은 진리의 영이다. 성령은 사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참된 실제를 나타내 보여주며, 빛 가운데로 인도해준다(엡5:13).

그 런데 만일 어떠한 운동이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의 기본 진리들을 무시하게 만든다면, 또한 기본적으로 교리와 신학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보기 힘들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요8:44)이기 때문에 참 말을 절대로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화끈한 체험만 추구하게 하고, 진리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무지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 성령님은 우리의 머리는 차갑게 하여 진리를 더 알게 만드시며, 우리의 가슴은 뜨겁게 만드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빛과 열을 함께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적극적 증거 5]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사 람들 사이에 역사하고 있는 영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영으로 역사한다면, 그것은 그 영이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사도는 요한일서 4장 7절-21절까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사도는 누가 참된 영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표지로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는 사랑은 마치 그 속에 성령의 참된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12-13절,16절).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동일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람 사랑에 대해서는 7절, 11절, 12절에서 말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관해서는 17절, 18절, 19절 등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20절과 21절에서는 두 가지 사랑을 함께 말하면서, 사람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성 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시는 사랑의 영이시다. 따라서 다음의 증거들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고 있고, 참된 은혜 체험을 했다는 최상의 증거인 것이다. 예수님을 “만 사람 가운데 뛰어나며, 그 전체가 사랑스러운 분”(아5:10,16)으로 여겨지고, 영혼에 보배로운 분으로 여겨지며, 독생자를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이끌려가며(요일4:9,10), 그리고 복음 안에 계시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속성들이 묵상하기에 매우 기쁜 대상들임이 느껴지고,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그분들의 임재와 교제, 교통을 갈망하고, 그분들을 따르기를 갈망하게 해 주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며 살기를 바라게 해 주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이다. 또한 성령님은 사람들 사이의 다툼을 억제하고, 화평과 우호의 영을 주고, 외적 행동들을 친절하게 하고, 다른 영혼들의 구원을 열렬히 바라는 마음을 준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기쁨을 누리도록 만든다.

물론 이 세상에는 진정한 사랑의 모조품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다른 모조품들과는 철저하게 구별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본질과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값없는 은혜와 주권이 얼마나 놀랍고 부요한지를 깨닫는데서 생긴 사랑이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원수요 미워하는 자임을 인정하면서 우리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느끼는 것이 수반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탁월함과 의를 모두 포기하는 것이 수반된다. 그리스도인의 덕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며, 자기를 전멸시키는 데서 빛난다. 즉 겸손에서 빛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혹은 참된 사랑은 겸손한 사랑이다(고전13:4-5). 예수님의 사랑은 온유와 겸손을 동반한 사랑이었다(마11:29). 따라서 사랑과 겸손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 마귀의 영에 가장 반대되는 두 가지이다. 왜냐하면 그 악한 영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교만과 악의에 찬 것이기 때문이다.



우 리는 앞서 살펴 본 성령이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5가지 기준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울러 배우게 된다고 백금산 목사는 평가한다. 앞서 본 5가지는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영혼 속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 안에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에 의한 부흥이란 한 개인의 성도 안에, 그리고 집단적인 교회 내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평상시보다 더욱 크고 비범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과 사랑,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과 열심히 성경을 탐구하는 것, 진리와 교리와 신학공부에 대한 관심, 죄에 대한 회개와 거룩과 성결한 삶의 추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등이야말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언제나 성도들과 교회가 힘써 추구해야 할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35).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방법-조나단 에드워드(부흥과 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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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niel

    2012/05/30 13:01 [수정/삭제] [답글]

    http://covenant.kimc.net/cgi-bin/general/read.cgi?board=ch2-ch&nnew=2&y_number=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