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Posted at 2013/01/07 09:51 // in 분류없음 // by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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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하나님

사사기 16:22-31

22 그의 머리털이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 블레셋 사람의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인생은 죄로 인한 실패가 가장 많습니다.하지만 여러 설교 및 신앙의 글들을 대하여 보아도 욥의 실패만 언급하지 삼손의 실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사람들은 욥을 운운하면서 아무런 이유없는 고난을 당할 때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 말합니다.다른 사람들로 인한 억울한 고난을 당할 때 끝까지 인내하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죄악이 부끄러워서 그런지 죄의 결과로 인한 비참한 상태에 떨어진 경우를 다루는 내용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죄악으로 인하여실패의 자리에 떨어진 세 사람의 삶을 간단하게 돌아보면서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에 대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첫째 인물은 삼손, 둘째 인물은 마가, 그리고 마지막인물로 베드로를 각각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첫째 인물인 삼손을살펴 봅시다. 삼손에 대하여 모르는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삼손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삼손은 부끄러운 인물입니다. 소위 바람둥이이며 음욕에 불타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창녀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무너뜨린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뱃속부터 하나님이따로 불러 세운 나실인이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사였지만 그의 삶은 기생과 함께 하던 삶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인생의 말기는비참하기 그지 없습니다. 삼손은 소렉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 여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은 천백 냥으로 매수된 더러운 여인이었습니다. 들릴라는 미모와 홀리는 말로 삼손을 속여 그의 나실인의 언약인 머리카락의 비밀을 알아냅니다. 결국 삼손이 잠을 자는 사이에 들릴라는 그의 머리카락 일곱 가닥을 밀어버립니다. 그러자 삼손은힘을 잃게 되고 그때 그 집에 잠복하여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눈을 빼고 가사로 끌고가서 놋 줄로 묶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인생 가운데그의 죄성으로 인한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여러번 위기를 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위기 때만 잠깐 정신을 차릴 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성을 이기지 못하고 간교하고 타락한 탕녀의 품에 떨어져 완전하게 멸망하는 비참한 인생으로 마무리합니다.

삼손은 다곤 우상을 섬기는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붙들려 눈이 뽑혀 맷돌을 돌리며 가장 비참한 상태가 될 때까지 영적으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삼손은 부끄러운 그리스도인의 대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그래서 그런지 그리스도인들은 삼손을 다루기를 거부합니다. 고작 삼손을 다루는 경우는삼손처럼 이방 계집을 사랑하거나 바람을 피워서는 안된다는 도덕적 교훈을 외칠 때가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삼손을 믿음의영웅으로 부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11:32).

분명히 삼손은 위대한 믿음의사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믿음의 거장으로 인정한삼손을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삼손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기간은 아주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진실한 회개를 통해 깊은 믿음에 이르러 큰 믿음의 역사를 일으켰기에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의 믿음이 크게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삼손이 믿음의영웅으로 변화되는 사건과 과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수 십년의 죄악된 삶을 살아온 삼손이라 할 지라도 그는 마침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승리의 삶을 살아내므로 주님의 나라에서 최고의영예를 누리는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삼손은 자신의 지은 죄악과 죄성 때문에 원수들에게 온갖조롱과 핍박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삶이 됩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삶입니다. 마치 우리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외롭고버림 받은 순간들을 지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는 달리 삼손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죄의 열매를 먹고 있습니다.그 열매는 말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부끄러움과 손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당하는처절한 조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삼손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죄값을 치르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연단을받습니다. 그 연단은 죄로 인한 비참의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이때그 비참의 열매는 실제로 이 세상에서 지옥처럼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주의 연단속에서 주님께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그 회개는 삼손의 믿음을 다시 회복시키고 깊어지게 합니다. 삼손은 고통과 수치 가운데서 자신의지나 온 삶에 대하여 낱낱이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주님과의 진정한 연합을 구하였을 것입니다.이에 성경은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였다”라고 증언합니다. 이는 주의 은혜가 삼손과 함께 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씀입니다.주의 성령께서 회개한 삼손의 마음 속에 역사하기 시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삼손은 회개하는 마음과함께 자신의 남은 삶을 주를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주를 위하여 드리기로 작정합니다. 자신의 죄성에 속은 스스로의 삶에대하여 분노하며 그 수욕과 실패의 자리에서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원수인 죄성과 ‘다곤’,죄와 마귀룰 대항하여 죽을 각오로 싸울 태세를 취합니다.

이를 영적으로 보면 내 속의육체, 즉 ‘죄’(육체)와 외부의 세상, 즉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사탄의유혹을 대항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것을 의미합니다.이제 삼손은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여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처럼 죄의 열매로 인한실패와 수욕과 비참에서 일어나는 자들의 특징은 죄를 대항하는 기도입니다. 회개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 드리는기도입니다. 또한 주를 위하여 남은 생명을 다 드리겠다는 목숨을 건 희생적 기도가 그 특징입니다.

한편 고통과 수욕 가운데삼손이 깨달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힘의 비밀이었습니다. 바로 그의 힘은 ‘내 힘’이 아닌‘주님의 힘’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의 힘의 비밀은 머리카락이라는 마술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힘의 비밀은 그를 떠나지 않고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실인의 마지막 언약을 무너뜨렸을 때 주의 영은 삼손에게서떠났고 그때 그의 힘은 완전하게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의 능력은 하나님과함께 동행하는 거룩한 삶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룩해야만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할 때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를 이기는 능력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든지 이런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이 비밀을 알기까지 삼손은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사와 능력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재능을 자신의 쾌락과 자랑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과 비참 및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삼손은 처절하게 주님이 그를 떠나시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수 없음 같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는 진리를 삼손은 수치와 비참과 고통 가운데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죽고자신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나로 강하게 하소서.”

이후 삼손은 승리의 삶, 그것도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물론 아주 짧은 인생 기간이었지만 그는 원수 다곤을 향하여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원수 다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확장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똑같은 죄성에 의해매일 무너지는 삼손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인데 그 죄성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삼손과 같은 비참한 자리에 떨어지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신자라면 그 자리까지 가지 않고 미리 회복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회개하기 바랍니다.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새해와 함께 거룩한 삶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 중에 과거에 지은죄로 인하여 비참과 실패 가운데 죄의 열매를 먹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까? 다행히 그 고통과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죄성을 끊은 자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삼손을 바라보기바랍니다. 그는 부끄러운 사람이 아닙니다.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수치와 고통을 지나면서 죄성을 제거한 인생을 삼손처럼 빨리 데려가지 않으시고 좀 더 오래 남겨 두십니다.즉, 삼손은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며 자신도 죽었지만 우리 신자들에 대해서는 우리하나님은 죽이지 아니하시고 수십년을 더 살리실 때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의 남은 삶에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위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회복의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으로 우리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며 우리의 남은 여생에 자비와 복을 베푸시기를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삼손의 마지막 장면은 그리스도의모습을 보여줍니다.

원수 마귀를 무찌르기 위해삼손이 취한 방법은 자신이 원수들과 함께 죽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내가 죽고 하나님의 영광을드러내려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로 인한 책망과 고난을 당한 이후에 삼손처럼 내가 죽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마음을 지닌다면 그가 바로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며,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위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삼손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열매로 아프다면철저한 회개를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죽기까지 주를 위하여 살겠노라고 비장한 각오를 하기 바랍니다.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성령으로 살려고모든 마음과 뜻을 하나님께 전부 드리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께 온전하고 철저하게 쓰임 받길 원하는 마음 가운데자신을 부인하며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순종을 하겠노라고 목숨을 걸고 각오하기바랍니다. 그러한 진심을 갖고 주께 돌아오면 주께서는 우리의 남은 평생에 우리를 넉넉히 사용하시며 영광을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둘째 인물로 마가 요한을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최초로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이방 나라들을 향한 선교사로 보내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때 마가가 그들과 함께 떠납니다.마가가 그들과 함께 이방 세상을 향한 최초의 선교에 참여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마가는 이 만큼 초대교회에서 인정받고 쓰임받던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 여행을 떠난몇 주 후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합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을 보니 마가가 교회 역사 최초의선교 여행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마가)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아마도 더 이상의 선교 여행에 재미가 없었든지 또는 복음 때문에 법정에 서는 것이 두려웠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자신의 형 바나바보다 바울 사도가 더 주도권이 있는 것을 보고 배가 아팠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가는 갑자기 선교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버가라는 곳에서 뒤로 돌아가 버렸습니다.이러한 태도는 믿음을 저버린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심한 결정 때문에마가 요한은 교회 공동체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실 마가의 중도포기는 다시는하나님의 나라에 쓰일 수 없을 그럴 정도의 중대한 실수였습니다. 불신의 행동이었고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때 마가의 결정은 그 당시교회 지도자였던 바울에게 큰 실망을 주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인하여 마가는 바울의 마음 속에 한심한 사람으로,아무 쓸모 없는 비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세계 최초 1차 선교 여행을 중도포기한 마가!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없이 일차 전도 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일차 전도 여행이마친 2년 후,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바나바가 다시 마가의 이름을 들먹거립니다. “바울 사도, 이번에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갑시다.”

그러자 바울이 대답합니다.

"절대안됩니다. 그는 비겁한 사람입니다. 저번에 그는 우리를 떠났습니다.그는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보기에는 마가는 하나님의귀한 사역을 감당하기에 자격이 미달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울과 의견이 달랐습니다.

"젊은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 다시 데리고 갑시다."

"안됩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의견이 나뉘어 ‘심히’다투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행전 15장39절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갔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바나바와 바울이 찢어지게 되고 바나바는 마가를데리고 따로 구브로로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 바나바와 마가는더 이상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도행전 15장 40을 보면 마가와 바나바 대신에실라가 등장하여 바울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가는 이제 하나님앞에 쓰임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일까요? 바울은 이 사건 이후 마가를 영원히 버린 것일까요?

이 사건이 있은지 15년 후의 바울의 글들을 보면, 놀랍게도 바울이 그의 사역을 마가에게 넘기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마가에게 그의 사역을인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4장10절은,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합니다. 지금 이 내용은 마가가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음을 알리면서 바울이 마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니 성도들은 마가를 바울만큼 영접하라는권면입니다.

또한 빌레몬서 24절을 보면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즉, 마가는 바울과 함께 있으며 바울의 동역자로 있습니다. 더욱이 디모데후서 4장 11절을 보면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증거합니다. 지금 바울은 마가를 자신에게 유익을 끼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죽음 직전에 마가를 간절히 찾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복음 사역에 마가가큰 도움과 유익을 주었다고 증거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하나님은 마가를 버리시지 않고 회복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믿음으로 저버리고 부끄러운 결정을내렸던 마가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기회를 주시고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바울은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겁하고 겁이 많아 도망을 쳤던 이 마가가 하나님의 은혜로회복된 후에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의 가장 위대한 사역, 즉 마가복음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는 마가가 엄청난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가롯유다와베드로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두 사람은 똑같이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베드로의 배반이 가롯 유다의 배반보다 가벼운 것이 절대 아닙니다.마가복음 14장 71절을 보면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그러면 가롯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가롯유다의 제일 큰 문제는우리 하나님은 항상 기회를 다시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모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무엇인지를 몰랐을 뿐 아니라그 은혜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의 죄악을 위함인 것을 모르고 도리어 부끄러움과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용서를 의지했습니다. 그는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의지하며 죄악과 좌절 속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며 바라보았습니다. 물론 가롯유다와 베드로의차이는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나타난자유의지적인 행위는 남에게 핑계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가룟 유다는 주님이 자신을 찾아오기 전에 밧줄에 목을 메고 자살하였습니다. 그는하나님께서 주실 은혜의 기회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낙심 가운데 인내하며 견디고 있었습니다.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기회를 잃고 실패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진리를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인생의 영원한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소망을갖길 원합니다.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과거의 실패를 과거로 던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일흔번에 일곱번이라도 우리에게 무한한기회를 다시 허락하시는 분임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성을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를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얼마나 후회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리석음과 실패와 고통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있습니다. 그분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어리석음과 실패에따른 고통의 기간은 하나님이 우리를 따로 만나시고 따로 사랑하시며 우리의 죄성들을 제거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더 큰 축복과 기회를 주시는 훈련의 기간입니다.그리고 반드시 고통이 지난 후에는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향한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것이 십자가가 담고 있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할렐루야! 이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험악하고부끄럽고 완전히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실패처럼 보이는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이있습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승리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와 고통 가운데 쓰러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또다시 회복의기회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은 그 어떤 일이있어도 영혼의 낭떠러지와 인생의 낭떠러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은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6-39). 그러므로 감사합시다. 어둡고 차가운마음 속의 그림자를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길 바랍니다. 그러면서이렇게 기도하기 바랍니다.

“오!주여. 실패와 좌절과 고난 속에서 주를 만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미래에 더 크게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2013년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좋으신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힘찬 소망과 기쁨으로 일어납시다. 즉, 큰 복을 얻을 수 있는 "회복의 기회를다시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납시다.

죄성에 쓰러지는 베드로와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28-3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우리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실 수 있는 것은 바로 주께서 치르신 십자가의 희생과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기회를 얻을 자격이 되지 않지만,내 대신 우리 주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 때문에 우리는 죄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나 주님이 주신 기회를 붙들 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셔서우리를 돌이키시면 그때 우리의 사명은 이 세상의 낙망한 영혼들에게, 기회를 잃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굳게 하는 그러한 일을 해야합니다. 우리아의 아내와 불륜을 행하고 나아가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다윗은 비참과 고통 가운데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그는 정확하게 십자가의 용서와 함께 다시 회복의 기회를 얻고 자신의 사명을 진술하였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9-13).

오늘도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함 가운데 일어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십자가의 구속을 감사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를 힘쓰기 바랍니다. 그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죄인들을 주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에 온 힘을 다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시 주신 회복의 기회 속에서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그러한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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