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론

Posted at 2009/01/06 13:37 // in Essay // by Daniel

왜 나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국회등등이 생각나는지..

 

아첨론, 아첨의 지극한 경지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보름 전 일이다. 일흔 쯤 되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자기 조상 문집이라며 『오유재집(烏有齋集)』이란 필사본 문집 한 책을 가져와 저자를 알려 달라고 하였다. 자기 조상 문집이라면서 저자를 모른다는 것이 적잖이 해괴했지만, 요즘 세태로 보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저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노인에게 사정을 그대로 말했더니, 적잖이 실망하면서 돌아서는 것이었다.

 

문집은 별반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붕당론」이란 글에 부기된 「논아첨(論阿諂)」이란 짤막한 글이 볼 만하였다. 혼자 읽기에 아까워 번역해 소개한다.

 

선비가 출세를 하려면 공부도 출중해야 하지만, 거기에 아첨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공부가 있으면 출세할 기본이 마련된 것일 뿐 꼭 출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남의 질시로 출세를 못할 수도 있다. 반면 공부가 없어도 아첨을 잘 하면 출세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요컨대 아첨은 출세에 꼭 필요한 조건이라 하겠다.

 

날카로운 어조로 권귀(權貴)를 비판하기도

 

아첨을 잘 하는 사람은 총명하고 약빠른 사람이다(요즘으로 치자면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다). 세상이 성현의 말씀과 다른 이치로 돌아간다는 것을 꿰뚫고 있다. 하나 세상을 성현의 말씀처럼 고쳐보자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부자(夫子: 공자)와 정암(靜菴: 조광조)이 실패했던 전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비판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날카로운 어조로 권귀(權貴)를 비판한다. 지금의 권귀가 앞으로도 장구하게 조정을 쥐락펴락할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권귀가 하는 일을 올곧은 어조로 조목조목 비판하되, 넌지시 빠져나갈 구멍까지 일러준다. 당연히 인격적인 비판은 하지 않는다. 권귀는 그 사람의 비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 불러 한 자리를 떼어 주면, 몇 번 고사하는 척 하다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조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대고 그 자리에 나아간다.

 

지금 권귀의 권세가 장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마치 원수를 대하듯 매서운 비판을 퍼붓는다. 실정(失政)은 물론 인격적인 부분까지도 마구 비난한다. 물론 백성을 위해서, 조정을 맑게 하기 위해서 등의 구체성이 극히 떨어지는, 그렇지만 듣기에는 무척 좋은 소리도 잊지 않고 곁들인다. 이것은 권세를 잡으려 세력을 키우고 있는 다른 당파의 우두머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좋은 신호가 된다. 과연 예상한 대로 환국(換局)이 되면 그는 곧 중용된다. 이 사람이 펼친 비판은 외견상 무척 정대하지만, 기실은 권귀에게 벼슬을 달라고 칭얼대는 아첨일 뿐이다. 이처럼 비판하는 척 하면서 하는 아첨이야말로 아첨의 가장 높은 도인 것이다.

 

조정에 들어오면, 권귀의 생각을 쫓기에 급급할 뿐

 

하지만 이 아첨꾼은 조정에 들어오면, 원래 떳떳하지 못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기는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던 입을 굳게 다물고, 권귀가 내뱉은 말의 속내를 헤아리는 데 나날을 다 보낸다. 오로지 권귀의 생각을 쫓기에 급급할 뿐이다. 아첨꾼이 언관(言官: 사헌부와 사간원)이 되면, 올곧은 언론은커녕 권귀의 뜻을 받들어 반대 당파를 공격하는 상소를 올리기 바쁘고, 천관(天官: 이조)을 맡으면 반대 당파를 배제하고 자기 당파만 심는 인사를 하고, 지관(地官: 호조)을 손에 넣으면 백성의 궁핍한 살림살이를 보살필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권귀와 당파의 재산을 불릴 방도만 궁리한다. 포장(捕將: 포도대장)이 되면, 도둑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백성을 잡도리할 꾀만 내는 것을 물론이다. 올곧은 선비와 백성들이 항의하면, 포의(布衣)로서 감히 조정의 일에 간섭하려 한다면서 정거(停擧: 과거 응시 자격 정지)를 시키고, 심한 경우 잡아다 옥에 가두어 매를 치기도 한다. 요컨대 아첨꾼은 사직(社稷)과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자리에서 떨려나지 않기 위해, 권귀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하고, 권귀가 흡족해 할 만한 일만 골라서 할 뿐이다. 아첨의 지극한 도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논아첨」을 읽고 나는 조선이 왜 망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유재집』의 저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해졌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오유재집』에는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 또 그 노인의 연락처도 적어 놓지 않았으니, 더더욱 알 길이 없게 되었다. 아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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