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 키우기. 롯. 에스겔. 사무엘. 모세. 요셉. 최에스더

Posted at 2023/01/22 19:35 // in 분류없음 // by Daniel

얼마 전 한인 학부모 선배님에게 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대학생활은 한국과 기존 세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문화충격이라는 취지의 말이었고, 그러니 아이를 미국에서 교육시키고 대학에 보낸다면 오픈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예를 들어 미국에서 대학에 입학을 두고 있는 백인 여자애의 경우 병원에 체크업하러 가면 루프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의사가 물어본다고 한다.

그만큼 성에 개방적이다 못해 특히 대학생활 동안은 무방비로 노출된다. 혼전성관계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섹스가 거의 스포츠마냥 보편화 되어있다.

그 집의 아이도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얼마전 룸메이트가 자기에게 콘돔을 주더란다. 자기 여자친구가 루프를 해서 이제 필요 없으니 너에게 준다면서.

그 집도 하나님을 믿는 집이고 믿음으로 양육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 문화에 던져진 청년은 과연 자신의 정결함을 지킬 수 있을까? 그 집은 아이가 고고하게 순결하길 기대하고 있진 않았다. 그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다만 서로 오픈함으로써 아이가 더 이상하게 엇나가지 않고 건전하게 살아가도록 바라고 있었다. 이미 그곳 학생들이 다 하듯이 고등학교때 부터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술 사러 다니고 한잔 씩 하고. 그 세대의 문화라고 한다. 미국의 백인 가정중에서도 아주 경건한 가정이 있다고 한다. 이 자녀도 그런 가정들이 보내는 기독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중에 자신들이 가장 개방적인 부모인데, 세상음악도 못듣게 하는 아이 친구들의 부모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거룩하길 바래서 그렇게 제한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려고 하는데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친구들은 오히려 부모 모르게 더욱 나쁜짓을 하고 있더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이를 미국에서 대학을 보내지는 말아야겠구나.. 유학을 보내려면 대학은 한국에서 보내고 대학원을 미국으로 보내야겠네.

그런데 이렇게도 얘기하더라. 한국도 미국 따라가고 있고 지금 한국의 어린 세대는 그에 못지 않다고. 한국도 이와 다를바 없다고.

아이를 어디에서 교육해야할 지 고민이 되었다.

가정예배 드리다, 에스겔 말씀을 보다보니 죄를 짓는 자들 곁에서 가랑비 젖듯 물들어서 “남들이 다 하는데 뭘” 하며 점점 거리낌 없이 죄를 지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을 보게되었다.

그래 롯도 그렇게 되었지. 롯도 에덴동산 같던 소돔으로 가서, 거기 평야에 지내다 결국에는 살기좋은 소돔시내까지 가서 도시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잘사는 것 같았는데.. 자녀들은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죄악이 나쁜 지 모르고 그 문화에 물들어버렸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 위해 나그네로 살고, 살기 좋은 소돔을 가지 않고, 자녀의 배우자도 굳이 가나안이 아닌 자기 고향 밧단아람에서 구해 경건한 자녀를 낳길 원했다.

그런데 새벽에 책을 어쩌다 보게되니,

최에스더 사모님은 사무엘, 모세, 요셉을 예로 들며,
과연 그들은 어떻게 자녀들을 보냈을까? 어떻게 자신의 품에서 내놓았을까 이야기한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실로의 성전으로 수종드는 아이로 보내졌다.

당시 엘리 제사장 때의 실로는 영적으로 어두운 때였다.
엘리는 영이 어두웠고 그 자녀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라 본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예배는 메말랐고 하나님의 말씀은 귀해 들리지 않았다.

내가 부모라면 그런 곳에, 죄악의 소굴에 젖을 갓 뗀 자녀를 선뜻 보낼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그것이 “믿음의 행동” 이라고 한다.

자녀가 내것이 아니라, 자녀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고.

그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내가 안심하고 보낼 수 있다.

그 하나님을 자녀에게 잘 심어주고, 소개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도밖에 없다. 자녀를 위한 중보기도가 중요하다.

하나님 제 아이를 지켜주세요. 험한세상에서 승리하도록, 강한 믿음을 주시고, 분별력을 주셔서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하소서.

그러고보니, 아브라함이 살았던 가나안도 소돔 못지 않은 죄악의 땅이었다. 그도 그곳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어떻게 자녀를 키울 지.. 그의 방법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는 거다.

“행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쉬운성경 행20:32 이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능히 세울 수 있고 모든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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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Posted at 2023/01/22 19:10 // in 분류없음 // by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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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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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죽은 자들을 위해 받는 세례는 무엇인가요?

Posted at 2022/10/17 13:16 // in Misc // by Daniel

죽은 자들을 위해 받는 세례는 생존한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을 대신해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수단으로서, 죽은 사람을 대신해 세례를 받는 비성경적인 관습입니다. 본질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관습은 고린도전서 15:29을 오역한 것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본 구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지만, 성경의 나머지 구절들과 비교해 보면, 이 구절이 죽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애당초에 세례는 구원을 받기 위한 필요요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 로마서 3:28, 4:3; 6:3-4). 문단 전체 (12-29절)는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가 아닌, 부활의 보증에 대한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 받는 세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구절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구절로써, 이를 해석하기 위한 서른 개 이상의 각기 다른 시도가 있었습니다. 1. 29절에 나오는 헬라어의 있는 그대로의 의미는 일부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대신해 세례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지 않을 것이면, 어째서 대신 세례를 행하는 걸까요? 2. 바울은 이단의 풍습을 언급하고 있거나 (“우리”가 아닌, “그들”이라고 표현함), 혹은 고린도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전에 죽은 믿는 자들을 위해 시행한 대리 세례라는 미신적이고 성경에 위배되는 관습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두 가지 해석 모두에서 바울은 이 관습에 대해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부활이 없다면, 어째서 이 풍습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한 모르몬교의 세례 관습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세례는 그리스의 사이비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었고, 오늘날 일부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 운명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26).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baptism-d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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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build.exe 로 sln 빌드하기

Posted at 2022/09/09 11:07 // in Tips // by Daniel

MS VC 프로젝트를 커맨드라인에서 빌드할 수 있다.

https://docs.microsoft.com/en-us/visualstudio/msbuild/msbuild-concepts?view=vs-2019

msbuild는 GUI 인 비주얼스튜디오에서 내부적으로 쓰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커맨드라인에서 부를 수도 있다.
환경변수는 설치경로\Common7\Tools\VsMsBuildComd.bat 에 있다.

아래처럼 하면 된다.

build.bat

:: make sure VS 2019 is installed.
call “C:\Program Files (x86)\Microsoft Visual Studio\2019\Professional\Common7\Tools\VsMSBuildCmd.bat”
msbuild “projectpath\projectname.s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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