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Posted at 2018/04/18 01:11 // in Essay // by Daniel

머리이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중한 사실의 두가지 예로 말하자면,

주기철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석방되어 나오셨을 때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신앙의 순결을 지켰던 사람들이 신사참배한 교단과 교회를 비판하며 새로운 교단을 세우자고 찾아왔단다. 그때 주기철목사님은 아직 그럴 만한 때가 아니며 그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맥빠진 답을 주셨다고 한다.

손양원목사님께서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살이를 하시고 해방 후에 석방되셨을 때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성도들이 모여 신사참배를 타협했던 교회들을 비판했을 때 손양원목사님은 이런 답을 주셨다고 한다. “우리는 몸은 수고스러웠으나 마음은 얼마나 평안했습니까? 하지만 그분들은 몸은 편했을 지언정 마음이 쉼없이 괴로웠을 테니 우리는 이를 살펴야 합니다.”

http://nomad2012.egloos.com/m/1169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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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밖에

Posted at 2018/03/27 01:49 // in Essay // by Daniel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나의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신과 심장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떠난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행사를 항상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갈급한 요즘, 자주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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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 소망

Posted at 2017/07/14 12:58 // in Essay // by Daniel

소망.

(잠 23:18)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 24: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롬 15:12~13)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딤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소망을 가지려면...
성경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 소망은 결국 우리의 구원에 대한 소망인가보다.
연단이 소망을 이루게 한다.. 고로 많은 참음과 고난이 있겠구나...
그리고 그 소망은 하나님이 주신다. 성령의 능력으로 기쁨과 평안 ->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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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하다

Posted at 2016/02/13 22:10 // in Essay // by Daniel

몰랐는데

나는 예전엔 여자가 착한 줄 알았다.
남자가 악하고 여자는 그에 비해 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여자도 똑같이 남자처럼 죄인이었다.
악한 종류가 다를 뿐이지, 그 속에 시기, 질투, 원망, 거짓말.. 다 있었다.

착하다고 믿은 내가 naive

여자는, 말을 잘한다.
자기가 틀려도 말로 자기를 옳게 만들 줄 안다. 자기를 피해자로 만들고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 줄 안다.
그러니 나같은 순진한 사람은 그걸 믿고 착하다고 본거겠지.
같은 여자도 그걸 아니까 여자끼리 만나면 싸움이 있는거겠지.

여자 무섭다. 정말 몸서리치게 무섭다.
진절머리나게 무섭다.
아니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악한이다.

옛 친구가 그랬었지, 정상인인척 코스프레한다고. 딱 그거였다.
그 사람과 나 뿐 아니라 모두 다 정상인 척, 착한 척 연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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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

Posted at 2015/03/29 00:17 // in Essay // by Daniel

어느 세대에나 교회는 십자가를 피하려는 해방신학에 부딪친다. 그것은 우익에서도 나오고 좌익에서도 나온다.
좌익의 해방신학은 압제 세력에 맞서 싸울 바라바들을 원한다. 마치 궁극의 문제가 사망 권세가 아니라 로마의 권세인 것처럼 말이다.
우익의 해방신학은 금송아지를 원한다. 금송아지는 일반 사회에서 종교와 “전통적 가치관“을 대변하고. 우리 모두에게 이집트에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안전을 상기시킨다.
양쪽 다 메시아가 아니라, 가이사나 바로를 원한다. – 러셀 D.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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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Posted at 2015/03/28 22:26 // in Essay // by Daniel

내게 의미 있던 거의 모든 것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꿈처럼,
허물 벗듯이,
사회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왜일까
어떤 이유일까. 내게 필요해서였을까?
그 많은 것들이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로 변했습니다.
어쩌면, 팔다리가 잘린 것 처럼 생각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
수년 전 심장이 도려내어지고, 반신이 잘린 것 같았던 이후.
이젠 사람이 아니겠네요.

그분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이 다른 존재인 것 같던 그 느낌
그게 다시 생각납니다.

그 말씀대로 모든 것을 떠나온 지금, 그게 최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한참이나 후에 알게 되겠죠.

나는 누구에게도 해 끼치고자 하는 맘은 없었습니다.

나도 모를 이유로 다만 순종하자고 갔을 뿐.

그들에게도, 이젠 멀지만, 소중했던 친구들이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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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의순

Posted at 2014/07/30 08:43 // by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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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 엘제아르 부피에

Posted at 2014/07/28 09:23 // in Essay // by Daniel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두레출판사” 에서 발췌

http://blog.ohmynews.com/yeskj/tag/%EC%97%98%EC%A0%9C%EC%95%84%EB%A5%B4%20%EB%B6%80%ED%94%BC%EC%97%90

나는 해발 1200~1300미터의 산악지대에 있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를 향해 먼 도보여행을 떠났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6월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나는 그림자 같은 그 모습이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가 아닌가 착각했다. 그것을 향해 걸어가 보니 한 양치기가 있었다.

나는 이 지역에는 마을이 드물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는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도토리 10만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는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신의 뜻에 따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전쟁터에서 싸웠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더 원기왕성해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다. 양들을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통의 벌을 치고 있었다. 양들이 어린나무들을 해쳤기 때문에 치워 버렸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열 살이 되어 있었다.
숲은 세 구역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장 넓은 곳은 폭이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20년 이래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동안 나는 그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한때 엘제아르 부피에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으나 모두 죽어 버린 일도 있었다.

1933년엔 숲을 보고 깜짝 놀란 산림감시원이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왔다. 이 관리는 ‘천연’ 숲이 자라는 것을 위태롭게 할 지도 모르니 집밖에서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이 노인에게 경고했다.

1935년에는 진짜 정부 대표단이 ‘천연 숲’을 시찰하러 왔다. 산림청의 고위관리와 국회의원, 전문가 들이 함께 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 것은 1945년 6월이었다. 그때 그는 여든일곱 살이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공기마저도 달라져 있었다. 옛날의 메마르고 거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만들어진 샘에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았다.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이 고장 전체가 건강과 번영으로 다시 빛나기까지는 그로부터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을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주었다.
옛 주민들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합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엘제아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두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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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I expect happiness?

Posted at 2014/03/29 01:07 // in Essay/DailyComment // by Daniel

Do I expect happiness?

No.

Happiness doesn’t matter at all some times,
especially for your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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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거 잘해요

Posted at 2014/01/18 00:09 // in Essay/DailyComment // by Daniel

난 그런 거 잘해요
잘라내는 거

끊어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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