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 엘제아르 부피에

Posted at 2014/07/28 09:23 // in Essay // by Daniel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두레출판사”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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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발 1200~1300미터의 산악지대에 있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를 향해 먼 도보여행을 떠났다.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6월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나는 그림자 같은 그 모습이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가 아닌가 착각했다. 그것을 향해 걸어가 보니 한 양치기가 있었다.

나는 이 지역에는 마을이 드물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는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이 황무지에 홀로 나무를 심어 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도토리 10만개를 심었다. 그리고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는 들쥐나 산토끼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신의 뜻에 따라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전쟁터에서 싸웠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더 원기왕성해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다. 양들을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통의 벌을 치고 있었다. 양들이 어린나무들을 해쳤기 때문에 치워 버렸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열 살이 되어 있었다.
숲은 세 구역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장 넓은 곳은 폭이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20년 이래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그동안 나는 그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한때 엘제아르 부피에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으나 모두 죽어 버린 일도 있었다.

1933년엔 숲을 보고 깜짝 놀란 산림감시원이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왔다. 이 관리는 ‘천연’ 숲이 자라는 것을 위태롭게 할 지도 모르니 집밖에서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이 노인에게 경고했다.

1935년에는 진짜 정부 대표단이 ‘천연 숲’을 시찰하러 왔다. 산림청의 고위관리와 국회의원, 전문가 들이 함께 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 것은 1945년 6월이었다. 그때 그는 여든일곱 살이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공기마저도 달라져 있었다. 옛날의 메마르고 거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만들어진 샘에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았다.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이 고장 전체가 건강과 번영으로 다시 빛나기까지는 그로부터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을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주었다.
옛 주민들과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합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엘제아르 부피에 덕분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두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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