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Posted at 2007/03/17 23:24 // in Essay // by Daniel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많이 아프셨을 때,
구정 연휴 다음에 휴가내고 찾아뵈었습니다.
하룻밤 같이 자고, 이제 돌아가려고
"할머니, 저 갈께요"
라고 하며 손을 잡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 어여 가야지"
하시는데,
한참을 손을 쓰다듬으시고, "어여 가야지" 말씀을 반복하시며 제 눈동자를 껌뻑껌뻑 처다보시더군요.

"어여 가라" 하시면서, 잡은 손은 꼭 쥐시고 놓치 않으시던 모습...

그렇게 보기를 원하셨는데, 그나마 돌아가시기 전에 뵌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더 자주 찾아뵐 껄 하는 후회도 듭니다.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 때의 그 눈빛과 꼭 잡으시던 손.
참 활기차시고 항상 무언가 해주시기만 하시던 분이 아프실 때 보니까 참 가냘프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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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기

Posted at 2007/03/16 13:38 // in Essay // by Daniel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라는 속담이 있나봅니다

작년에 두 회사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인 GCT와 T* 라는 영국계 회사였습니다.
대우는 비슷한데 하나는 무선 칩 회사였고 하나는 휴대폰 플랫폼 회사, 게다가 M*사라는 큰 미국회사에 합병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지금의 회사를 선택한 이유중에 하나는, 이 회사가 특별히 나를 더 필요로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꼭 오도록 하기 위해 여러가지 궁리를 하더군요.

어쨌든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외할머니가 월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침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팀장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의 반응은,
"언제까지 쉬려느냐" 였습니다.

조의를 표하거나 걱정해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원래 사규에 3일 휴가가 되는데, 그 휴가를 주기도 아까와 하는 것이었죠.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3일동안 회사에서는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 위치가 어디인지, 발인이 언제인지 묻는 전화 한통 오지 않았습니다.

제 사촌 여동생 하나는 오라클에 다닙니다.
장례식장에 가보니 한국오라클 사장이 보낸 화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동료도 찾아오더군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당시에 제가 갈까말까 고민했던 M*사 대표이사의 화환이 오라클 바로 옆에 와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드러나는 것이죠.

내가 왜 이 회사를 선택했었는지 후회가 됩니다.

그리고 요즘 그런 후회하는 일들이 좀 많습니다.

친구도 마찬가지죠, 올 수 있는 사람이 오지 않고 연락을 다시 받지 않거나....
그런 경우, 차라리 연락하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이 일로 친구 하나를 잃어버릴테니까.. 진짜 친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후회는 아무 쓸 데 없는 것이죠. 이미 끝난 일.

대신에 하나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선택 때에는 이 일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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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Posted at 2007/03/16 13:37 // in Essay // by Daniel
외가 쪽의 사람들은 집안이 다들 잘 됐습니다.
맏아들은 대학교수(영향력 있는)이고, 나머지 딸들의 남편분들은 대기업 상무부터 공기업 처장(처장이면 아마 이사 바로 아래일 겁니다)까지 있습니다.
다들 맨 밑에서부터 착실하게 올라가 성공하신 분들이죠.
우리 집안만 내세울 게 없지요.

이번에 외조모 장례 때는 정말 그 파워가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외삼촌이 몸담고 계신 학교와 관계회사들에서 많이들 찾아왔고, 한전과 도로공사 관련 업체들에서 대거 부의금과 화환을 보내왔습니다.
SK는 울산에 있는데도, 그리고 장모 상인데도 계열사 직원들이 한꺼번에 올라오고 회사 상조회에서 일도 해주고...
제가 장례기간 내내 조의금 명부 정리를 했는데 명부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컴퓨터로 입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발인날 밤중에야 입력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집안에선, 다니는 교회에서, 그리고 아버지 친구분들 몇명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어머님께는 이것이 컴플렉스가 되나봅니다.
내세울 것은 아들의 학력밖에 없지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부터 제가 성공하기를 많이 바라십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 저만 바라보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것에 너무 휘둘리면 안되는데...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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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함

Posted at 2007/03/14 21:09 // in Essay // by Daniel
외할머니 장례식 부의금 목록을 정리했습니다.
외삼촌, 이모부들이 다들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입니다.
한 분은 대학교수시고, 공기업의 처장 두 분, 대기업 상무 한분, ETRI와 국방과학연구소 팀장 등...
그래서 그런지 회사와 거래처에서 많이들 오셨습니다.
조화도 90여기나 오고...

부의금을 정리하다보니 거래처나 회사 높은 분들은 부의금 금액이 컸습니다.
어떤 경우는 꽤 놀라기도 하지요

계속 큰 금액들, 정형화된 금액들을 보다가 특이한 액수를 보았습니다.
25,000원.

보통 만원단위로 하는데 5천원단위 지폐까지 같이 넣어 주신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보통 3,5,7,10 만원 단위로 넣으시더라구요)

궁금해서 봉투에 써져 있는 분이 누구신지 물어봤습니다.
"그거 친척이야 할머니와 사촌되시는 분"

왠지 애틋했습니다.
나이 먹은 여자분은 보통 형편이 어려우시거든요. 그래서 부의금 낼 형편도 많이 안되실텐데...
그래서 그나마 내신 돈이었을 것 같습니다.

거래처나 기업의 다른 분이 내신 몇십만원보다 훨씬 따듯했습니다.

화장터에서도 사촌형제분들이 가장 많이 우시고...

우리보다 훨씬 외할머니를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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