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기

Posted at 2011/06/15 21:45 // in Essay // by Daniel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최고 표현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 릭 워렌, <그 청년 바보 의사>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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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년 :-)

Posted at 2011/06/15 15:53 // in Essay/DailyComment // by Daniel
이제, 일년 됐어요

축복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나도, 회복하고 좀 더 담담하고 정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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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마음과 시선을 집중하기

Posted at 2011/06/14 21:43 // in Essay // by Daniel
하나님께서 바꾸지 못할 사람의 마음은 없다. 하나님께서 손이 짧아 바꾸실 수 없는 상황이 있을까?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다. 나는 이 상황에 압도되거나 두려워말고 그 모든 상황과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분께 나의 시선과 마음을 집중시켜야 한다. My eyes are fixed on You, Oh Lord...

다시 읽기 시작한 "바보의사" 책에서 나온 말입니다...
울지 않을 수 없던 책.. 다시 나의 중심과 시선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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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은 완벽하므로

Posted at 2011/06/01 13:06 // in Essay // by Daniel
주의 사랑은 완벽하므로 주님은 결코 매정하시지 않습니다.
결코 매정하시지 않습니다...
다시 은혜를 구할 수 있게 하는 고백..

<1분 찬양> 에서..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시145:3

주여, 저는 주님의 광대하심의 높이와 깊이, 길이와 넓이를 결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주님에 대해 생각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의 지혜는 완벽하므로 주님은 결코 실수하시지 않습니다.
주의 권능은 완벽하므로 주님께 결코 패배란 없습니다.
주의 지식은 완벽하므로 주님은 결코 틀리거나 모르시지 않습니다.
주의 신실하심은 완벽하므로 주님은 약속을 어기시지 않습니다.
주의 사랑은 완벽하므로 주님은 결코 매정하시지 않습니다.
주의 거룩하심은 완벽하므로 주님은 결코 죄를 범하시지 않습니다.
주의 공의는 완벽하므로 주님은 결코 불공평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단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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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때에 선택하는 행동 두 가지

Posted at 2011/05/31 14:41 // in Essay // by Daniel

고난의 때에 선택하는 행동 두 가지

자신을 포기하는 것

또는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포기하는 것


만일 내가 고난의 때에 자신을 포기한다면

소극적으로는 무언가에 빠져 살고,

적극적으로는 삶을 자포자기하고,

어쩌면 삶을 놓아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그 고난의 시기를 통해 자기 삶의 찌꺼기들을 제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마치 그 고난이 순수한 금을 만드는 제련 과정 처럼,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붙드는 시간이 된다.

"없어도 되는 것"들을 포기하고

"붙잡아야만 하는 것"들을 깨닫게 하는


그래서,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내 안의 가장 귀한 가치들을 빛나게 하고,

그 길을 걷는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고난이 자기 유익이었노라고,

고난으로 인해 감사하다고,

그런 역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오직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 - 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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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이야기..


그러나 인간은 연약해서 고난이 올 때 항상 바람직하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힘듭니다.

가끔은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힘듭니다.

아니 내겐 그렇게나 힘들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붙들 수 있던 것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고난은 결국에는 지나갑니다.

내가 A를 받았든 C를 받았든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내가 낙제를 했어도, 그래서 고난으로 인해 절망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인생의 고비 고비 마다,

그 다시 주시는 기회,

다시 주시는 회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떠올릴 때마다

감사로 인해 눈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은혜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126, 올해 받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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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크리스천

Posted at 2011/05/31 10:43 // in Essay // by Daniel
대화의 주제. 사고방식의 차이
부자들의 대화는 성공에 초점을 둔대요. -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고 사업과 기부, 예술품 투자 등을 화제로 얘기한다고 해요.
평범한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한대요. 연예인이나 스포츠, 가십거리를 화제로 이야기한대요.

"부유하다는 것은 돈이 많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여러 가지 태도의 집합이며 특정한 삶의 방식"이라고 해요 - 스콧 피츠제럴드

맞아요.
크리스천도 그래요.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 삶의 태도 이런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해요.
우린 세계관이 다르잖아요?
우리의 관심이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고 가십거리를 주로 입에 올린다면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과 같아요.
우리는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할까요?

다시 롯과 아브라함에 대한 이전의 묵상을 떠올려봅니다.
롯이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에 거기 살면서 자기를 찾아온 천사들을 보호하려고 나설 때
그는 부유하고 명망 있는 사람으로 적응해 살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너는 우리 편이 아니고 끼어들어온 나그네라고 합니다.
가장 중요할 때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맛 잃은 소금이 아닐까)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살았어요.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를 구하며 이야기할 때,
자신을 나그네로 소개하며 요청할 때,
세상 사람들은 그를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이야기해요.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는 거에요.
자기와 다르다는 걸.
그의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그의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맞아요.크리스천은 단순히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것은 위에서 인용했듯이 관점과 태도예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목적과 비전을 두고.
때로는 그와 부딛히는 현실로 인해 고민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보는 그런 거에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10:41,42)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요.
그 관점으로 삶을 보아요.
베풀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신뢰하며, 전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삶을 살아요.
그래서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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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생활. 사고방식의 차이.

Posted at 2011/05/31 10:36 // in Essay // by Daniel
조용한 생활. 사고방식의 차이.
부자와 가난한 자와의 차이 중에 "집이 조용하다"가 있대요.
부자들은 TV를 항상 켜두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대요.
TV보다 신문을 보고, 인터넷도 뉴스 사이트에서 뉴스를 읽고.
TV로 시간낭비해서라기보단 환경을 시끄럽게 해서 사색과 대화를 방해한대요.
고요함.
그게 필요해요. 그래야 사색할 수 있어요.

나도 부자가 목표는 아니지만,
사색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식사 때도 TV를 보지 않으려구요.
외로울 때 아니면, TV 안보려구요.
TV보다는 책을 읽고,
성경을 읽고,
설교 말씀 듣는 게 좋아요.
TV 보다보면 금새 시간이 가버리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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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의 인생엔 바람이 분다

Posted at 2011/05/30 22:29 // in Essay // by Daniel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의 인생엔 바람이 분다. "특이한"-뻔하지 않은 기도를 하며, 하나님이 통치하심이 보여지는 삶의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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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의 족보 - 다윗과 밧세바와 같은 부부가 되고 싶어요.

Posted at 2011/05/26 21:29 // in Essay // by Daniel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랑 다르게 나와요.
그거 설명한 자료가 아래 링크에 나와요.

http://cafe421.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580&fldid=Gile&contentval=0001fzzzzzzzzzzzzzzzzzzzzzzzzz&nenc=y8McCQFicrsRcnFPgRPTmw00&fenc=&q=&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http://kcm.co.kr/bible/mat/s_ma003.html

누가는 마태랑 다르게 마리아의 계보를 썼어요.
요셉에게서 난 게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났으니까.
마리아도 다윗왕의 혈통이에요. 대신에 솔로몬이 아닌 나단의 자손이에요.
나단은 솔로몬의 형. 밧세바의 셋째 아들이래요. 솔로몬은 넷째, 사실상 다섯째(첫째가 범죄의 댓가로 죽었으니까)
(대상 3:5)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슥 12: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성경은 간통으로 생긴 아이가 죽고 다윗이 밧세바를 위로하고 다시 동침하여 솔로몬을 낳은 것처럼 되어 있으나 그 사이에 세명의 아이를 낳는 세월이 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밧세바는 그 시간까지 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 평화의 사람이란 뜻의 이름이다.
솔로몬은 평화 중에 태어났고 다윗이 시편 32 편, 52편을 통해 보듯 죄의 근본을 깨닫고 정결케 된 상태에서 얻어진 아들이다."

http://jayou.ne.kr/bbs/bbs.htm?dbname=N0234&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2&num=2

이런 말이 있어요.  나단이 넷째, 솔로몬이 다섯째라는 건데...

아마도 밧세바는 다윗을 보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었나봐요.
남편인 다윗의 신앙을 따라..
셋째(넷째)인 나단을 낳을 때 까지.
그리고 솔로몬을 낳을 때, 그 때 다윗이 밧세바를 위로하고 아기를 낳은 거에요.
(삼하 12:24-25])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밧세바는 그 때까지 준비된 거지요.
평화를 의미하는 솔로몬을 낳을 때 까지, 은혜를 구하며 회개했어요. 그랬던 것으로 보여요.
어쩌면 그 어머니로 인해,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피흘림이 많았던 다윗은 하지 못했던) 역사를 이루어요.
성전 시대의 막을 여는거죠.

그리고 아직 그 범죄중에 낳았던 나단에게서와, 그리고 솔로몬에게서 계보가 흘러
마리아와 요셉에게로 이어져요.
나단의 후손 마리아에게서 (요셉은 육신적으론 전혀 관계없다고도 할 수 있지요) 죄짐을 지시는 예수님이 나와요.
은혜 시대의 막을 여셔요.
어쩌면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주님을 주시는 것..
회개한 사람에게는 죄짐이 놓여진 사람에겐 (예수님의 피로 깨끗해진 사람에겐)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쌓는 사람이 되게 하셔요. 그런지도 몰라요.

누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나봐요. 그렇게 세심하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그렇게나 많은 의미를 그 족보에 담으신 것을, 말하고 싶었나봐요.

나는,
하나님께 기도해야겟어요.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렇게 부부가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되어서,
솔로몬 같은 아이를 낳도록.
그래서 하나님께 여디디야(사랑받는자)란 이름, 평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도록요.
저보다 저의 후손이 더 하나님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런 자손들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부부, 가정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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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이어져 가야 할 복음

Posted at 2011/05/26 21:24 // in Essay // by Daniel

"대대로 이어져 가야 할 복음"


강돈욱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강돈욱은 교육가였고, 교회의 믿음 좋은 장로였다. 그에게는 강반석이란 딸이 있었다. 강돈욱은 딸에게 반석이란 든든한 이름도 지어 주었고, 평생 교회 생활을 이어 가는 종교성도 물려주었다. 그리고 동네의 믿는 총각 김형직을 남편으로 짝지어 줬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수직적인 증거를 확실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김형직과 강반석 사이에 김일성이라고 불리는 김성주가 태어났다. 김형직과 강반석은 아들에게 풍채 좋은 외모와 똑똑한 머리와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 등 많은 것을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만 빼놓고, 그러나 그들이 제쳐 놓은 한 가지 일, 곧 복음의 수직적 증거에 실패한 일 때문에 우리민족은 반년이 넘도록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언젠가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 자서전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어린이 사역자인 내 뒤통수를 치는 두려운 문장을 봤다.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내 손을 붙들고 교회에 갔다. 목사의 설교는 길고 지루했다. 어머니는 계속 졸고 있었다.” 그것이 기독교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자란 김일성이 자서전에 기록한 그의 영전인 경험의 전부였다.


복음은 수평적으로뿐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증거되어야 한다. ‘청출어람이청출어람’(靑出於藍而靑出於藍)이란 말을 우리 마음에서 잊으면 안 된다. 우리를 능가하는 건강한 제사장들을 세워야만 우리의 증거는 땅 끝까지 이를 수 있다.


양승헌의 [크리스천다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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